한라산을 다녀온 뒤, 설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여름눈입니다.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우연치 않게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엔, 머릿돌이 있었고, 그 머릿돌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적혀있는 문구는,
"지리산 천왕봉 1915m"
네.
대한민국 에서 한라산 백록담 다음으로 높고, 본토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 머릿돌에 적혀있는 문구입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인의 기상을, 직접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보고 느끼고 왔습니다.
그럼, 여름눈의 지리산 천왕봉 당일치기 산행기. 시작하겠습니다.
여름눈이 이번 지리산행에 이용한 등반코스는, 위 지도의 파란색 선 입니다.
백무동-5.8km-장터목-1.7km-천왕봉-5.4km-중산리. 전체 12.9키로 코스.
아래 자세한 로그를 올리겠지만, 위 지도에서 보이는 그래프를 잘 보시면, 대충의 코스 난이도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록색 영역은 고도, 파란색 영역은 속도 입니다.)
참고로, 백무동-장터목-천왕봉-중산리 코스는 모두 A랭크의 비교적 어려운 코스 입니다.
다른 코스들보단 비교적 편하고 빨리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쉬운 코스라는 뜻은 아닙니다.
위는, 지리산 국립공원에 나와있는 지도입니다.
백무동 코스를 이용한 천왕복 루트를 안내하고 있는데요, 쇼요시간 7시간 30분..
등산에 서투르거나 체력에 자신 없으신 분은 저기에서 두어시간 더 보태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식사시간 제외이니, 끼니당 한시간씩 더해야 합니다.
실제로, 등산경력 얼마 되지 않는데다 체력까지 저질인 여름눈의 경우에는,
새벽 3시 40분에 등반 시작해서 오후 4시 10분에 하산 완료했습니다. 즉, 12시간 30분 걸렸단 말이지요.
(백무동 시외버스정류소에서 중산리 시외버스정류소까지 걸린 시간이고, 아침 점심 두 끼 식사시간 포함입니다.)
웃긴건,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위 지도에선 1시간으로 적혀있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면 1시간40분으로 적혀있습니다.
현지에 적혀있는 시간이 오히려 더 정확한 것 같네요.
그러니 위 지도의 예상시간은, 그냥 참고 정도만 하시기 바랍니다.
2010년 1월 25일.
집에서 요즘 열감하고 있는 파스타를 보고, 버스를 타기 위해 동서울 터미널로 갔습니다.
혹시 모르니, 티켓은 미리 예매를 해놓았습니다.
동서울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는 아래의 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 표에 나오는 시간표가 동서울에서 지리산 백무동으로 가는 정기편입니다.
배차간격이 달라질 수 있으니, 위 표는 참고만 하시고, 정확한 사항은 동서울터미널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실질적으로, 당일치기로 천왕봉을 볼 수 있는 버스노선은 24시 출발 심야편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외, 세석대피소나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하는 여정일 경우에도, 8시20분과 10시30분 이외엔 이용할 버스편이 없네요.
드디어 매표소에서 예매했던 티켓을 실물로 교환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딱 한군데 문 열고 있는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음료수 등을 샀습니다.
(내심 롯데리아가 문 열고 있기를 바랬었는데.. 아쉽네요..)
식량도 준비되었으니, 이젠 버스에 몸을 싣고 출발함니다.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정확히 3시간 35분 뒤에 지리산에 도착했습니다.. ^^
버스는 백무동 정류소에 멈처서고... 사람들은 내립니다.
근데, 정류소에 불이 켜져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화장실 문도 잠겨있습니다.. ㅠㅜ
근처 가게들도 영업하지 않고, 불빛이라곤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전광판 정도.
공기도 맑고, 별도 많이 보이고.. 좋습니다.
불빛이 없으니, 일단 바로 베낭에서 헤드렌턴부터 꺼내고, 이것저것 등산준비를 마친 뒤,
아이폰에 깔아둔 RunKeeper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위 이미지는, 런키퍼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실시간 측정된 데이터로, 아이폰(터치)에서도 위 내용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고,
인터넷 http://runkeeper.com 에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보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위 프로그램의 사용기는, 작성중이므로, 작성 되는대로 이 곳에 링크 거는 방법으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백무동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장터목 대피소 까지의 GPS실측 거리는 6.73km입니다.
거의 1,100m의 고도차이를 등반해야 하는 코스. 단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칼로리 소비량.. 장난 아닙니다.
몸무게값을 기본값으로 놔두는 실수를 해서, 아마 저것보다 더 많은 칼로리가 소비되었겠지만,
저 상태만 놓고 보더라도 성인 1일 기초 소모 칼로리와 비슷합니다.. ^^
일기예보상,오전까지 춥다가 오후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등반 시작한 30분 부터 물백의 호스가 얼어서 물이 안나오기 시작합니다.
한번씩 물 마시려고 멈춰서서 호스 녹이고 하는 촌짓을 하며 진행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더 걸렸던 듯 하네요..
비니에 땀이 맺히고, 바로 얼어버려서 사진에 하얗게 보이네요.. ^^
혹시 몰라서 가져간 바라크라바가 새벽에 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은행강도의 느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ㅎㅎ
야간산행은 처음이었는데요,
불빛 하나 없는 산 속에서 혼자 걷는데다, 주위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들..
그리고, 곳곳에 붙어있는 곰을 만났을 때 대처요령 등의 현수막을 보면서 가니 꽤 무서웠습니다.. ^^
여담이지만,
코베아 이스케이프 코펠..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1리터의 크기임에도 공간사용이 잘 되어있고, 무엇보다 코펠 안에 버너와 가스를 넣을 수 있게 설계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32리터 베낭 안에 모든게 다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아 꽤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슬슬.. 동이 트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은 장터목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었는데...
백무동-장터목 구간의 난이도를, 조금 낮춰 잡고 초반에 페이스를 올렸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장터목에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서 해가 뜨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가 보입니다.
저 때의 느낌은.. 겪어본 사람 만이 알 수 있을껍니다.. ㅎㅎ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에 끝이 보이는 그 기분이란.. ^^
이미 해는 떴습니다.
장터목에 도착하면, 이런 장관이 지친 몸을 반겨줍니다.
맑은 하늘에, 연무로 인해 환상적인 절경을 보여줍니다.
페이스 조절 잘 해서.. 30분만 일찍 도착할 수 있었으면..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었을텐데..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아침식사시간입니다.. ^^
오늘의 아침은, 참치 넣은 신라면 곱배기. ㅎㅎ
바로 이겁니다.. 이 때를 위해 산행을 하는 것입니다.. ㅋ
단백질 보충을 위해 참치넣어서 고소해진 라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뱃속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
불 주위에 얼어붙어 고생했던 물백을 빨리 녹으라고 꺼내놓습니다.
물백에 물 2리터를 넣어 갔었는데, 장터목까지 오면서 0.5리터 마시고, 라면 끓이는데 0.7리터 사용했습니다.
물이 절반도 남지 않았습니다. ㅎ
식사를 마치고, 간이설겆이 하고, 꽉꽉 채워넣은 뱃속을 소화시키기 위해 장터목에서 휴식시간을 갖습니다.
식사하기 전과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장터목.
아침 어스름이 완전 없어지고, 맑고 화창한 하늘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셀카(ㅡㅡ)도 찍고, 슬슬 출발합니다.
천왕봉으로.
장터목에서 천왕봉 까지는, 꽤 짧은 거리 입니다.
해발고도 270m만 오르면 되는 코스.
장터목에서 제석봉을 오르고, 조금 내려온 뒤 다시 천왕봉을 오르게 됩니다.
위 그래프를 보듯이, 제석봉까지의 구간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석봉을 지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천왕봉 구간에 진입하면, 길이 좀 험해집니다.
전반적인 난이도는, 백무동-장터목 구간 난이도의 80%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제석봉을 오르며 보이는 풍경.
여기서 부터 고사목이 꽤 보이기 시작합니다.
근현대 지리산 역사의 아픈 기억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찍는다는 통천문 입니다..
누구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문이라고 합니다만,
저에게도 허락한 것을 보니, 생각보다 꽤 쉬운 문이라 생각합니다.. ^^
통천문만 지나면, 이제 금방 천왕봉 정상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러면서 10분을 끄역끄역 올라가면,,,
이런 최고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산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보여준다.
정말 멋지고, 공감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리산 천왕봉 머릿돌 입니다.
백무동에서 부터 무려 8,230미터의 길을 따라, 해발고도 1,394미터를 올라왔습니다.
지금 있는 천왕봉은 해발고도 1,915미터 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백록담과, 두번째로 높은 지리산 천왕봉.
두 곳 모두를, 여름눈의 두 다리로, 직접 걸어 올랐습니다.
내 발 아래에, 세상이 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나보다 밑에 있습니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된다' 입니다.
실제로 보니, 그 감동이 더합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천왕봉을 오르며, 그 만큼의 시련은 극복하였습니다.
앞으로 많이 남은 인생의 시련도, 마찬가지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천왕봉 인증 ㅋㅋㅋ
저거 한장 찍으려고, 아무도 없는 천왕봉에서 사진 찍어줄 사람을 30분 동안 기다렸습니다.
근데 찍고나니, 그렇게 잘 나오진 않았어요 ㅎㅎ
라면먹고 좀 자서 그런지, 얼굴이 땡땡 부어있습니다 ㅋ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평일이라고 해도, 천왕봉에 사람 한명 없습니다..
분명, 장터목엔 사람이 엄청 많은데 말이지요.. 왜 안올라오는거지..? ㅡㅡ;;
인증사진 찍어줄 사람 아무나 올 때 까지 기다리다가,
너무나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만 담기도 뭐해서, 동영상도 한번 찍었습니다.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가는 루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진행했던, 천왕봉-중산리 코스이고,
두번째는, 천왕봉-장터목-중산리 코스 입니다.
위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천왕봉-중산리 코스는, 엄청난 경사도를 보여줍니다.
보통은 하산길이 정말 수월하지만, 이번 코스는, 하산 코스도 절대 수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코스로 등반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그렇진 않은것 같은게,, 중산리에서 천왕봉 오르는 한 여성 등산객은 너무 힘들어 울면서 오르고 계셨으니까요.. ^^;;)
하산 거리가 조금 더 길고, 장터목까지 왔던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보다 편한 하산길을 원할 경우엔, 천왕봉-장터목-중산리 코스를 이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아이폰에 보조배터리까지 물려가며 작성한 로그인데..
결국, 로터라 대피소에 도착하면서 배터리 아웃.
다음엔 보조배터리를 두 개 들고 산에 올라야겠습니다.. ^^;;
로터리 대피소 까지의 로그가 저렇고, 중산리 까지는, 저런 길이 아직 두 배는 남아있습니다.
인증사진도 찍었겠다...
이젠 하산합니다.
사진에서, 저 멀리, 가운데 보이는 군락이 중산리 입니다.
거의 수직코스로, 중산리까지 내려갑니다.
말은 쉽지만, 막상 하산길 접어들면서 부터 막막해지기 시작합니다.. ^^;;
하산길에 너무 집중해서인지.. 사진이 없네요...
로터리 대피소 바로 위에 있는 법계사 입니다.
중산리의 험한 산세에서, 물 보급이 가능한 두 포인트 중 한 곳 입니다.
(아.. 로터리 대피소에서 물을 살 수 있으니, 포인트는 세 곳이 되겠네요..)
로타리 대피소에 도착.
배가 많이 고픕니다. ㅎㅎ
이번에도, 라면 한개에 계란 하나 넣어서 해먹습니다.
이제 1/3 왔으니, 다리를 독려하며 다시 출발 합니다.
갑자기 남은 2/3 다 건너뛰고, 하산완료 입니다.. ㅋㅋ
산세가 험한데다, 그다지 찍을만한 풍경은 없어서 냅다 달려 내려왔네요 ㅎㅎ
얼굴에 소금끼이고, 머리카락 엉킨게 장난 아닙니다.
사진 좌측에 있는 화장실에서 몸 좀 가다듬을려고 했더니, 동파방지로 화장실 폐쇄했답니다.. 이런.. ㅡㅡ
별 수 없이 벤치에 앉아, 땀에 젖은 장갑이랑 비니 좀 말리고, 땀에 쩔은 오버트라우저도 벗어서 말립니다.. ㅋㅋ
몸과 얼굴, 머리카락은 물티슈로 대충대충.
대충 몸 단장은 됐으니, 이제 서울가는 버스 타러 갑니다.
여기서 바로 탈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만....
중산리 버스 정류소는 여기에서 1.7Km를 더 내려가야 합니다.
중산리 버스정류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저는 위의 배차시간표를 몰랐기에, 1시간을 저기서 기다렸습니다.. ㅋㅋ
저걸 알았다면, 중산리 탐방지원센터에서 저렇게 한가롭게 옷 말리거나 하진 못했을껍니다 ㅎㅎ
기다리는 동안, 해가 지고 있습니다.
해 뜨기 전에 시작한 산행이, 해 질 무렵까지 되다니. ㅎㅎ
저기 보이는 산이 천왕봉일까요...
그렇다면, 너무 가깝게 보이는 것인데.. ㅡㅡ
서울로 가실 분은, 중산리에서 원지까지 매표한 뒤, 원지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내리면 됩니다.
(오후 5시 5분발 중산리 버스 탔는데, 5시 45분에 원지 도착해서 5시 50분발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
동서울에서 백무동으로 갈 때와는 다르게, 버스가 우등고속 입니다!!!
지친 몸을 좀 더 편하게 하면서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저 고속버스는 진주에서 출발,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우등고속버스 이지요.
진주에서 타게 되면, 비용이 원지보다 몇 천원 더 비싸게 나올 듯 합니다.
그러니, 자리 구하기 어려운 성수기가 아니라면, 굳이 진주까지 가서 서울행 버스를 탈 필요가 없습니다.
(원지에서 진주까지 가는 시간도 있고, 무엇보다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또 움직여야 합니다)
동서울에서 백무동까지 22,000원이었고,
중산리에서 원지까지 3,300원에 원지에서 서울(남부터미널)까지 16,800원이니 20,100원.
동서울에서 백무동은 심야구간이란걸 생각하면, 둘 다 교통비는 비슷하게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오후 5시 50분 고속버스를 타고, 밤 9시 10분에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
밤 9시 50분에 집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전날 밤 11시에 집 문을 나섰으니, 딱 23시간만에 돌아온 집.
이정도면, 당일치기의 한계까지 갔지 않았나 합니다.. ^^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리산 종주를 한번 해 볼 생각입니다.
그 때 까지, 몸과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어서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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